『힐링여행~

낙원을 그린화가 고갱 그리고 그이후

먼산가랑비 2013. 6. 27. 07:16

 

▲ <낙원을 그린 화가 고갱 그리고 그 이후>
- 일시 : 6.14~9.29
- 장소 :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2,3층

인상주의에 종말을 고한 화가 고갱(1848~1903)의 작품이 최초로 한국에 소개된다.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었던 고갱의 걸작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다. 서울시립미술관과 한국일보가 공동 주최한다

무료한 일상에서 혼자 나섰다 ...고갱을 만나러

 

종종 가보지만.....시립미술관에서는 좋은 작품들을 많이 전시한다 꾀된듯한데 고호 전시회 이후 첨 가는거 같다

<낙원을 그린 화가 고갱 그리고 그 이후(Gauguin : Voyage into the Myth)>展은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2,3층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에서는 전 세계에 뿔뿔이 흩어져 있던 고갱의 작품 50여 점을 소개한다.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 런던 테이트, 파리 오르세미술관, 모스크바 푸시킨 국립미술관, 일본 시즈오카 현립미술관 등

세계 30개 미술관이 소장 중인 고갱의 진품을 대여해 왔다.

고갱의 작품에 으뜸으로 꼽는 작품....실제 사이즈로 관람객들에게 사진을 찍으려고 마련한거 같다

고갱이 둘째딸이 죽었단 소식을 듣고 자신이 그간 너무 슬프고 고뇌하다가 자살을 하려고 까지 하던때 ..이작품을 남기고 죽으려고 그렸다는 그림이다

고갱은  세잔·고흐 등과 함께 후기 인상파의 한 사람인데, 세잔은 객관적 또는 공간적인 것을, 고흐는 주관적인 것을 제재로 하였으나,

고갱은 장식적인 것의 부활을 주로 하였다. 그의 강렬하고도 새로운 장식풍의 그림은 후세 그림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고갱의 작품은 사지못하지만 ....기념품으로많이 ~

전시회 안에서는  촬영금지가 돼 있어서 이곳에서 많은이들이 기념촬영을 남기고

주최 측에 따르면 고갱의 3대 걸작이 한꺼번에 전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

고갱의 3대 걸작은

스코틀랜드 국립미술관 소장품인 ‘설교 후의 환상’(1888), 올브라이트녹스 아트 갤러리 소장품인 ‘황색 그리스도’(1889),

보스턴미술관 소장품인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1897~1898)다.

전시 작품의 보험평가액은 총 1조 5천억 원. 2007년 반고흐전에서 기록한 1조원을 한참 웃도는 금액이다.

 

 

보스턴미술관 소장품인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1897~1898)

오른편에서  왼편으로  파노라마처럼 
시간의 변화를  담아내고 있어  흥미롭다
 
오른 편에  누워 있는  어린 아기는  우리의 지난 과거이며
그림 중앙에서  지혜의 과실을 따는  젊은이는  우리의  현재 모습
왼편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닥쳐올  죽음의 고통을
귀로 막고있는  노인의 모습은  바로  우리의 미래 모습이다
 
그의 그림은  마치  심포니의 장대한  악상처럼
인간이 짊어진  삶의 애환이 담겨있어  감동적이다
 

 

올브라이트녹스 아트 갤러리 소장품인 ‘황색 그리스도’(1889),

스코틀랜드 국립미술관 소장품인 ‘설교 후의 환상’(1888),

 

제목: 타이티의 여인들 해변에서 (1891년)

 

요 그림은 유명하죠? 그런데 재미있는걸 발견했어요.. 1891년에 그림과 유사한

1892년에 그린 타이티의 여인들이 또 있다는것을요^^

그런데 특이한 점은 계절이 변한듯한데...왼쪽 아가씨는 일년전이나 똑같다는 사실을요~

 

 

제목: 마리아를 경배하며

 

 

 제목: 과일을 쥐고 있는 여인 (남자 같구만 ㅋㅋ)

 

 

 

제목: 언제 결혼하니? (제목이 재미있죠?)

 

 

 

 

 

 

 고갱에게는 순수함에 대한 정열이 있었다. 문명의 거짓을 좋아하지 않았다.

거짓이 없는 순수함 속에는 이 있다. 거기에는 시(詩)가 살아 있다. 고갱은 1887년 봄에 남미로 건너가고,

 다시 마르티니크 섬으로 가지만 병으로 인한 고뇌로 귀국한다. 그리하여 이듬해 퐁 타뱅으로 다시 가 거기에서 젊은 화가들과 만나 새로운 회화의 이론을 주장한다.

.

 

 

 

 

이어 고흐의 초대로 아를르에도 가지만 그 우정은 깨져 버려, 재차 순수함을 그리워한다.

그 염원을 달성한 것은 1891년으로, 고갱은 태평양타히티 섬 민중들의 순수한 삶과 개성에 감동하여 수많은 작품을 그려 낸다.

고갱은 한번 파리에 돌아오지만, 1895년에는 타히티에 돌아간다.

그러나 그림 제작하는 것 외에는 궁핍과 병과 싸우는 생활이고, 1901년에는 도미니카 섬으로 옮겨 가서 고독한 생애를 마친다 

 

 

 

 

 

고갱의 회화는 생활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고 돈은 다 떨어져서 아내의 고향인 덴마크로 가는데 덴마크에서 발표한 일도 실패,

고갱은 처자를 남겨두고 단 하나의 어린아이를 데리고 파리에 나타났다.

그러나 생활은 궁핍하여 포스터를 붙이는 노동도 했다.

그리고 1886년부터 브르타뉴의 퐁 타뱅으로 가서 젊은 화가들과 만나, 인상파의 그림에 만족하지 않고, 독자적인 화풍을 창시,

평면적인 채색으로 장식적인 그림을 그리면서, 그의 화풍을 따르는 젊은 화가들과 '퐁 타벵(Pont-Aven) 파'를 창립하였다. 파리로 돌아가서는 고흐를 만났다

 

 

우리들의 정서에 좋은 초록....

낯설지 않게 나를 반겨준 시립문화관

고갱의 생애는 파란만장하다. 아버지는 자유주의자로서 망명하여 남미 리마로 가던 도중에 죽고, 그 후 고갱은 7세 때에 프랑스에 돌아온다.

 바다를 동경하여 선원이 되어 남미도 항해하지만, 결국 포기하고 그만두고 화가로서 새출발을 한다.

고갱은 편지를 쓸때 자신의 초상화를 그려서 늘 보냈다한다 ..이그림에서도 황색그리스도를 뒤에 두고 그렸다
폴 고갱 (Paul Gauguin) 화가
생몰1848년 6월 7일 ~ 1903년 5월 8일
출생지프랑스
데뷔1876년 풍경화 비로플레 숲의 잔디 살롱 입선
경력말벌 편집장
 
 

고갱의 3대작품이 이렇게 한자리에 모인건 처음있는일이란다

모두 가서 이런기회를 잡으시길...

고갱의 마음을 생각을 느껴보심 좋을거 같다

-서울시립미술관 고갱 관람기-

6시이후에 관람하면 2000원 할인 ㅋㅋㅋㅋ